이란-투르크메니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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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부터 근대까지
2.2. 현대
3. 상호 교류, 교통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투르크메니스탄, 이란의 관계에 대한 문서.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부터 근대까지[편집]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호라산 지역은 이란계 아리아인들의 영역이었고 메디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파르티아, 박트리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란계 원주민들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는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호라산이라 불렸다. 7세기 중엽, 아랍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사만 왕조가 들어서 이란 동부와 호라산을 중심으로 다스렸다.

투르크멘인들이 호라산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셀주크 제국 시대였으며, 이들은 호라즘 왕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몽골 제국이 페르시아를 침략하면서 호라산 그리고 호라산 서부의 오늘날 이란에 해당하는 지역 농경지가 상당부분 파괴되면서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이란계 정주민 농민에서 투르크멘 등등 유목민으로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근세시대에는 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티무르 제국이 붕괴된 후 카라쿰 사막을 경계로 카라쿰 사막 이남은 사파비 왕조, 나디르 샤아프샤르 왕조가 나타났다. 카라쿰 사막 이북은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이 다스리는 영토가 되었다. 나디르 샤는 북부 영토의 쿠르드인들을 진압한 후 북진하여 히바 칸국부하라 칸국을 정복하고 히바 칸국 내 투르크멘인들을 신민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투르크멘인들이 히바 칸국에서 호라산 서부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후 카자르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카자르 왕조는 사파비 제국이나 아프샤르 왕조에 비해 전쟁 수행 능력이 빈약하였고, 순니파 히바 칸국은 시아파 카자르 왕조를 상대로 지하드를 선언하고 정기적으로 카자르 영토를 습격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납치해갔다.

카라쿰 사막 이북의 부하라 칸국과 히바 칸국은 제정 러시아의 간섭을 받기도 했으며, 훗날 부하라 칸국과 히바 칸국은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1881년에는 카자르 왕조 역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페르시아 북동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이 들어서면서 이란 북동부 국경 일대에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구성되었고, 1925년 이란에서도 카자르 왕조가 붕괴되어 팔레비 왕조가 들어섰다.

2.2. 현대[편집]


냉전 때는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소련의 영역이었고, 이란은 왕정, 공화정 안 가리고 반공 성향을 유지하였다. 이후 소련이 해체된 후 1991년에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되어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수교를 맺었다.


3. 상호 교류, 교통 교류[편집]


이란 북동부 호라산 지역에는 오늘날 약 1백만여 명 상당의 투르크멘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문화, 언어를 공유한다. 또한 투르크메니스탄에도 소수의 페르시아인들이 거주한다. 두 나라는 카스피 해를 접해있으며, 카스피 해를 따라 철도, 파이프라인 등이 건설되었다. 두 나라는 이슬람 협력기구에 속해있다. 다만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종파, 종교적 내부 이념이 다르고, 카스피 해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도 있었던 만큼 서로 거리를 두는 편이기도 하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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